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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 이야기 - 커리어 매트릭스(1)

가끔씩 강연 요청이 옵니다. 대학교에서 요청을 받게 되면 대개의 경우 잘 가는 편입니다. 세부적인 요청이 있을 때도 있고,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… 러프한 주제를 받게 되면 강연 초반에는 대개 그동안 다녔던 회사들과, 그 회사들에서 했던 고민들 이야기를 합니다. 어쨌든 듣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긴 한데, 도움은 고사하고 졸리지나 않으면 다행 아닐까 싶지만… 아무튼. 아무리 생각해도 이 주제의 제목은 커리어패스보단 매트릭스가 맞는 것 같습니다. 절대 단선적이지 않으므로.

저는 스스로를 데이터분석가라고 이야기하긴 하지만, orthodox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. 물론 모든 일들이 스펙트럼 어디쯤에 있겠지만, 일단 전산/통계 전공은 아니고, 첫 회사도 건설사, 하던 일들도 심지어 해외현장의 시공관리(물론 어쩌다 보니 SAP를 만질 일이 있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이고). 첫 직장 이후의 제멋대로의 선택들, 과도기의 운, 좋아해서 찾아봤던 것들, 그리고 필요해서 공부했던 경험들이 겹쳐져서 수렴진화한 쪽에 가깝습니다. 시간적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replication이 잘 안될 것 같아요. 그래서 누군가가 커리어와 관련된 고민을 이야기해오면, 제가 했던 고민들을 이야기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.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해 보는 것으로요.

전공 : 생각보다 영향을 많이 준다

단순히 서류전형에서 어떤 직군을 쓸 수 있다, 없다의 이야기라기보다는, (최소)2~4년,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낸 경험이 이후의 선택과 사고방식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큰 것 같습니다 (그냥 제가 건축과 건축을 둘러싼 것들을 여전히 좋아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습니다. 이 포스트 path가 SML-XL인데, 제가 학교 다닐 당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건축가인 rem koolhaas의 포트폴리오-작품집 이름입니다. 작업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책 이름이 워낙 인상깊어서…)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방식을 생각해보면, 여전히 설계수업에서 배웠던 기획의 개념들과,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줌인-줌아웃을 통해 스케일을 확장하고 해상도를 조절하는 접근방식은(제 기억으로는) 설계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. 어디까지나 제 시각에서 그렇단 이야기.

왜 대기업-건설사를 갔나?

일단… 시작은 도망입니다. 설계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는데, 동기들을 보면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. 근데 제가 그 친구들 정도로 잘/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고… 자신도 없는데 설계사무소에 취업을 하자니, 노동조건이 너무 안 좋다는 인식도 있었구요. 요즘 얼마나 받는지 잘 모르겠네요. 대학에 처음 가서 약간 놀랐던 거라면, 유학을 상수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되게 많구나.. 였다는 것입니다. 뭐. 아무튼. 가려면 내가 벌어서 가야지. 대학원에 언젠가는 가고 싶었는데, 바로 가긴 싫었고요 - 결국 이사람은 자기 돈을 들여 대학원에 가게 됩니다 - 그런데 또 외국에서 일해보고 싶긴 한데, 건축학 전공이 지원할 수 있는 회사가 몇 개 없네? 건설사 공채를 쓰고, 해외에 갈 수 있는 직군으로 지원하자- 같은 사고의 흐름이 있었습니다. 돌이켜보면 대충 이런 흐름이었네요. 일단 가서 체질에 맞으면 계속 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. 가보니까 월급도 잘 나오고. 몸은 힘들지만 학교다닐때 밤샘하던 것 보다는 나은 것 같고요. 근데 왜 다니기 싫지? 괜찮은 것 같은데 왜 그렇지? 그때는 몰랐습니다. 사람은 원래 3년쯤 지나면 이유는 없고 그냥 그만두고 싶어한다는걸…

(계속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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